유치환님의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려 나부끼고
더어더 의지삼아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사랑하는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