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본 생활기

  1. 일본이란 ?
  2. 한마디로 말하면 일본은..
  3. 일본인과 에로스
  4. 일과 일본
  5. 질서와 친절 그리고 절약
  6. '텐노'의 나라 일본
  7. 일본을 알자
  8. 일본의 통신망
  9. 언어와 생활 양식
  10. 자판기의 나라, 일본
  11. 이지메와 노조끼
  12. 큐슈 여행 (사진 포함)
  13. 토쿄여행
  14. 쿄토,나라,오사카 여행
  15. 일본 여행의 포인트
  16. 일본의 술
  17. 일본에 진출한 한국인
  18. 일본에 관한 책
  19. 일본의 대학
  20. 일본 유학
  21. 그들의 망언
  22. 독도는 우리땅
  23. 그러면 그들은 있냐 없냐
  24. 맺음말: 내가 있던 큐슈 대학교

안녕하세요? 먼저 저를 약간 소개하죠. 저는 홍 성익이라고 하고 현재 NC state Univ.에 박사과정으로 재학중입니다. 우선 제가 일본에 가게된 경위를 설명드리죠. 제가 석사 과정 1년차이던 95년 어느날 일본 문부성 산하 국제 교류 뭐라는 협회 장학금으로 일본에 1년간 유학할 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생각해보니 점점 그쪽에 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감시간 지났다고 막 뭐라그러는 과 사무실 아가씨를 졸라 팩스로 관련 서류를 보내게 되었습니다(쓰레기통에서 꺼내 주더군요.. --;;). 그후 몇몇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큐슈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때부터 그 다음해인 96년까지의 얘기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보람차고 재미있고 또 아름다왔던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그 당시 얘기와 일본에 대해 느낀 여러가지를 적으려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일본은 '있네' '없네' 하는 양비론에 저도 한몫 끼어들기 위함은 아닙니다. 단지 제가 보고 겪었던 것들을 그냥 그대로 적고 또 나름대로 생각한 바를 써서 저의 기억도 되살리고 관심이 있는 다른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해서 입니다. 혹 잘못된 것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분들은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글을 쓰기 전에 저의 일본 생활에 활기와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던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이 글의 일부는 ohm.kaist.ac.kr 의 비비에스의 Lab/MCR 에 연재하였던 것 입니다. 생각날때마다 조금씩 적은 것이라 앞뒤 연결이 좀 어색한 곳도 있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1. 일본이란 ?

    "일본"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었입니까? 보기 (1) 왜놈 (2) 쪽발이 (3) 정신대 보복 (4) 망언 (5) 다맞다 (6) 답많다 예. 물론 정답은 5번이죠. (6번도 맞음 ..) 이렇게 우리의 인식은 일방적으로 나쁜쪽으로 편향되어 있고 또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현상황을 고려 하지 않아서도 안 되겠죠. 일본은 지금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며 그 군사력 또한 미,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 권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은 일본인을 만나면 덮어 놓고 흥분부터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좀 자제해야 될 것 같습니다. 또, 서양사람이 길거리에서 좀 이상한 짓을 하면 `문화가 다르니까' 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본인의 경우에는 `역시 쪽발이'라고 매도하는 것도 약간 편향적 이고 과거에 얽매인 생각 같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와 일본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을 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에 가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면서 도쿄에 가면 왜 "쪽발이 시키들" 하며 우리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입니까. 과거에 대한 사죄와 배상, 받을 것은 다받아가면서 실리를 챙길 수 있는 한국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2. 한마디로 말하면 일본은 ..

    제가 느끼기로는 일본인의 가장 큰 특징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상반되는 것 같기도 한 이 두가지 특성을 무시한채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먼저 집단주의란, 여행사의 깃발아래 몰려 다니는 일본인 관광객을 생각하시면 간단 합니다. 개개인의 취향은 무시한 채 여행사의 스케쥴에 의해 몰려 다니게되죠.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소수의 지도자급 (약 5%정도인것 같은데 정말 똑똑합니다.)의 의견과 지시에 정말 묵묵히 잘 따라갑니다. 우리 같으면 `내가 이거 아니면 굶을 것 같아' 또는 `남자가 밸도 없냐, 더러워서 못하겠다' 정도의 일들도 아무 불평없이 (적어도 상사가 보는 앞에서는) 해나갑니다. 당나귀같이. 두번째 개인 주의란, 얼핏 집단주의 와 정반대의 개념처럼 보이나 같은 의미입니다. 즉, 집단주의의 성립을 위해 필수 불가결 한 것이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 남의 일에 간섭하기, 등은 일본 사회에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체적 예를 들면, 11명이 같이 땀흘리며 축구를 해도 목마르면 자기 혼자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빼마시며 그렇게 해도 전혀 눈치받지 않습니다. 머리카락을 빨갛게 물들이든 반쪽만 물들이든 , 여자가 대낮에 길에서 담배를 피워 물든 거꾸로 물고 있든 누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얘기한 것들은 지역차가 있고 개인차가 있으므로 모두에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보고 듣고 느낀것을 토대로 적은 것이므로 저의 개인 의견이 들어갔고 또 들어갈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 합니다. 그냥 하나의 참고로서 '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또는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말씀드릴 것들은 (1) 우리와 다른 그들의 생활 습관 (2) 우리가 배워야할 좋은 생각, 제도들 (3) 세계 속의 일본과 한국,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도 문제, 한국 관련 그들의 망언, 세계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편향된 태도 등입니다. 그럼 다음회를 기대해 주십시오...

  3. 일본인과 에로스

    이번 이야기는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이 (아마도)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부탁인 일본의 `성'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에서는 이에 대한 거론 조차도 금기시 되어왔던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이웃 일본은 정반대입니다. 소위 말하는 `포르노' 테이프의 천국이기도 하고요. (미성년자가 읽지 않는 다는 가정하에 쓰고 있기는 하지만 혹시 미성년자가 계시면 따옴표 내의 글은 읽지 않도록 보호자께서 책임져주시기바랍니다...:) 터키탕, 소프랜드,성인 영화관, `포르노' 비디오점 ... 셀 수 없이 많은 `윤락 업소' 들이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일본 패전 당시 미 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상륙한후 일본의 병참기지 들과 산업 시설을 둘러보고는 개미같이 일만 하는 일본인들을 좀 풀어지게 하기위해 이런 산업(빠찡꼬 포함)들을 장려 했다는 설, 훈도시를 입고 생활했기 때문에 (훈도시는 노출이 심함) 옛부터 어쩔 수 없었다는 설 등이 있는데 모두 사실인 것 같습니다.

    터키탕이란 (터키 대사관에서 항의 하여 지금은 소프랜드:soap land 로 이름이 바뀌었음) 아가씨들이 손님을 목욕시켜 주는 곳이죠. (곳이랍니다.. 들었을 뿐임!) 물론 때수건 대신 자신의 몸을 사용 하죠. (몸에 비누를 바르고 --> soap) 1인당 약 4만엔 정도 (30만원 정도) 라는데 TV 프로에도 소개되곤 합니다. 일본의 TV 는 우리가 생각 할 수 없을 만큼 저속한데 보통 비키니는 기본이고 밤(보통 12시 이후) 의 민영 방송 프로는 우리나라 에로 영화는 비교가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설날 바로 전날 ( 일본은 양력만 씁니다. 그래서 설날은 양력 1월 1일 , 추석은 양력 8월 15일 입니다. 추석은 `오봉'이라고 발음) 밤 8시부터 12시 까지 가위바위보 등 게임을 해서 지는 편이 옷벗기를 하는데 끝까지 벗드만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 물론 수건 같은 것으로 가리긴하지만 (상체는 나옴) 우리같으면 어디 상상이나 할 일입니까.

    하지만 낮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요조숙녀, 신사로 돌변(?)합니다. 여자의 경우 스커트를 입으면 치마가 날리거나 혹시 너무 야하게 보이지 않을까 앉을 때도 되게 신경을 씁니다. (그래 놓고는 밤에는 돌변을 하죠..) 초중고의 90 % 이상이 남녀공학인 일본은 미팅같은 제도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물어보니 잘 모르더군요..). 연인의 경우 여자가 연상인 경우도 꽤 되고요. 스모(일본 씨름 --이들이 입는 것이 훈도시죠.)의 영웅 타카노 하나만 해도 일류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 (모델) 와의 결혼이 집안의 반대로 좌절된 후 8년 연샹의 여인과 결혼을 했죠.

    남녀 혼탕도 있는데 이곳은 거의 노인들만 오기 때문에 우리 같은 (젊은)사람이 가면 `보임을 당할' 뿐이라고 합니다 (할머니들에게..).하지만 이제는 그리 많지도 않아 일부 온천 지역에만 간간히 있습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만해도 디폴트로 혼탕이었기 때문에 개항주의자들에 의해 혼욕 금지령이 내려지기까지 했을 정도로 심했다고 하고 '유나'라 부르는 '목욕탕집 아가씨'들도 (매춘부..) 많았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주로 17 세 전후에 첫경험을 가지고 그렇지 못하면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다고 생각되기도 한답니다. 남자 목욕탕에 여자 주인이 거리낌 없이 들어오기도 하고 화장실 하나를 남녀 같이 쓰기도 하는 나라. 이것이 일본입니다. 그 결과인지는 몰라도 성범죄가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밤거리가 가장 안전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4. 일과 일본

    요즘 모두 자기 일들 하시느라 바쁘신데요. 그러고 보니 '일벌레' 라고 일컬어 지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한자 적어 봅니다. 그들은 참 일을 열심히 합니다. 거의 일에 파묻혀 지내죠. 집에 일을 갖고 가는 것은 다반사이고 일을 하다가 버스,전차 다 끊어져 버린 사람들을 위 한 '캡슐 호텔' 이라는 것도 많습니다. 2평 정도의 작은 방에서 자고 비용은 택시 비용보다 저렴합 니다. (참고로 택시 비용은 우리의 4 - 6배 가량 , 김포에서 신촌까지 택시로 갔다가는 한달 월급 거덜나죠.. 모두 무전기를 갖고 있으며 - TRS 라고 생각됩니다만 : 대전 택시들은 모두 갖고 있더군요.. - 우리처럼 길거리에서 잡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회사에서 원하면 무엇이든 합니다. 도쿄에서는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 두군데 (두 부류) 있는데요, 한군데는 시부야, 록퐁기, 아카사카, 신쥬쿠 등의 유흥가 - 이런곳들은 거의 그다음날 동 틀 무렵까지 토요일 오후 명동거리를 방불케 합니다.- 이고 나머지 한군데가 신쥬쿠, 심바시 등의 관청가입니다. 밤을 낮삼아 일을 하는 거죠. 이 두군데를 모두 보고나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 저는 무서운 놈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요..

  5. 질서와 친절 그리고 절약

    잘사는 나라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자연 자원이 많던지 사람들이 머리가 좋던지 아니면 물려받은 재산이 많던지.. 일본에 살면서 받은 느낌은 참 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버스 요금은 70년대 이후 바뀌지 않았다는 것 같고 95년의 경우 도쿄물가는 0.5% 가량 내렸답니다. 하긴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긴 하지만..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나가 보면 그들의 질서 의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로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시속 100 km 가 제한 속도 인데 거의 대부분의 차들이 이를 지킵 니다. 물론 '와카모노'라고 불리는 일부 젊은이들은 외제차를 타고 140 이상으로 쌩쌩 달리긴 하지만요. 오토바이가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약간 낯설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나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손님이 알아서 기어야 하지 않습니까 ? (이건 좀 심했나..) 특히 의사, 공무원 들의 친절에는 정말 놀랐습니다. 의사는 하나의 전문직 종사자로서 그리고 공무원은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생각을 철저히 가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게 쉬운 말로 아주 자세히 설명을 해 줍니다. 우리도 빨리 이렇게 되어야 할텐데..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의사들 정말 콧대 높죠. 환자들이 정말 설설 기어야 하지 않습니까 ? ) 버스 기사들도 다음 정거장 안내는 물론 , 교차로 에서 '회전합니다'하고 항상 방송해 줍니다. (버스기사들은 모두 정장을 하고 마이크를 달고 있습니다.) 또 쓰다가 새것으로 바꿔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던지 작아져 못입게 된 옷, 이사가면서 버리고 가야할 식기등은 한달에 두번 정도 열리는 바자에 내다 팝니다. (물론 거의 공짜로). 사는 사람들도 정가의 10 % 내외의 가격으로 사게 되죠. 이런 바자에 아침 일찍 가보면 줄을 길게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우리가 70 년대에나 입던 옷같은 것을 입고 다닙니다. 물론 학교별로 다르고 지역별로 다르고 또 우리와 유행이 달라서 일 수도 있습니다만.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등하교하는 사람들이 많고 각 지하철역에는 자전거 주차장이 마련되 있고 거기에는 자전거들이 항상 가득차 있습니다. 때문에 미니 스커트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지요.. 겉치레 보다는 아끼고 아껴 정말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태도. 이런것들은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

  6. '텐노`의 나라 일본

    대기이론 공부하다가 하도 안되서 글이나 하나 쓸까 하는 마음에 이렇게 `컴'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일본왕(천황이라고 하죠)에 대해 말씀 드릴까 합니다. 일본에서는 왕이 머물던 도시에는 무조건 수도 `경' 자를 붙입니다. 지금의 수도는 동경(토쿄)이고 옛 수도는 경도(쿄토)이죠. 옛부터 무사들이 집권 계급이었던 일본에서 `왕'이란 하나의 얼굴마담이었습니다. 지금의 왕의 계보는 메이지 유신때부터 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때의 획기적 계혁에 있어 국민의 불만을 무마하는 하나의 구심점을 얻기 위해 유명 무실 했던 왕가를 부활시켰던 것이죠. 그러나 근친결혼의 악습 때문에 왕가의 자손들은 점점 무능해져 갔고 (무사들이 바라는데로) 급기야 백치 천황까지 나타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 세기 초 타이쇼 - 쇼와(히로히토: 2차 대전중 재위)- 헤세 (현재)로 연결되는 계보중 타이쇼 왕은 바보 였다고 합니다. 재위 기간도 10 년이 안되는데 아마 궁내부 대신들에 의해 암살되었을거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의식있는 왕가자손들에 의해 근친이 아닌 똑똑한`평민'을 왕비로 맞아들이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왕비 `마사코' 도 하버드 (?) 출신 평민 외교관이었죠 - 4개 국어를 유창히 구사한다고 합니다. )

    일본에는 서력 대신 연호 ( 지금은 헤세 8년 )를 많이 사용합니다. 유명한 만화 중에 '헤세 너구리 전쟁 폼포코`(?) 만화도 있죠. (내용은 무지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 지금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번 또는 다음 왕을 마지막으로 공화국제로 바뀌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입밖으로 함부로 내지는 못하고 있죠. 앞으로 어떻게 변해 갈 지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7. 일본을 알자

    일본의 땅 넓이 , 보통 우리땅이나 걔들 땅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실제는 한 두배가까이 되죠(남북한 합한 것의). 아마 영국,이탈리아,일본 중 가장 땅이 넓은 나라는? 이라는 질문에 '일본'이라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요, 사실은 일본입니다. (1) 혼슈 (본주) 227,414 (2) 홋카이도(북해도) 78,073 (3) 큐슈 (구주) 36,554 (4) 시코쿠(사국) 18,256 합해서 360,297 (이상 제곱킬로미터) 길이는 엄청 길어서 시속 200-300 km를 오르내리는 신칸선으로도 남쪽끝에서 북쪽끝까지 가는데 12 시간 가량 걸립니다.(물론 도쿄에서 갈아타야 하지요.) 맨북쪽의 홋카이도 사람들은 메이지 유신 시대까지만 해도 거의 원숭이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 하고요 (실제로 원숭이가 많음) 아직도 결혼같은 중대사에는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또 맨남쪽에 있는 큐슈사람들은 생김새가 대륙적이라고 합니다.(트기겠죠...) 참고로 오키나와는 1972년에 일본땅이 되었고 요즘은 괌, 사이판과 더불어 신혼 여행지로 인기가 높습니다.(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아무로 나미에'라는 가수의 출신이 바로 오키나와입니다. 아무로 나미에의 앨범은 대부분이 최고 히트를 기록하고 우리의 팝과도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한번 사서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외 인기 가수로는 'trf' : ('ref'가 생각나죠?) ,샤란 Q 등이 있습니다. 듣다 보면 우리나라곡과 똑같은 곡을 아주 많이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참..)

  8. 일본의 통신망

    먼저 유명한 NTT(Nippon Telephone & Telegraph)가 있죠. (일본의 공식 영어명은 Nippon 이지만 대개 Nihon 이라고 합니다. 헌법에는 강한 느낌을 주는 Nippon 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지만 스포츠 중계등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서비스 제공 업자(국제)인 KDD (001), ITJ(0041), IDC(0061) 등도 있습니다. 이들 3개의 사업체는 각기 여러가지 서비스로 고객들을 끌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이텔,천리안 같은 것으로는 FUZITSU 의 NIFTY-Serve, NEC의 PC-VAN, ASAHI-Net,PEOPLE 이라는 4대 통신서비스 제공업체가 있습니다. (아마 니프티 서브가 가장 유명할 걸요..) 그리고 풀뿌리넷(쿠사노네네토)이라고 불리는 사설 bbs 도 2000 곳이 넘는다고 합니다. (96년 초 현재)

    휴대 전화로는 '케-타이'라고 불리는 진짜 휴대 전화, PHS (Personal Handphone System) 와 '포케베루(포켓벨)'라 불리는 삐삐가 있습니다. 케-타이는 가격도 비싸고 통화료도 비싸나 거의 모든 곳에서 통화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휴대폰과 똑같습니다. 문제는 송수신 겸용의 PHS 이죠. 우리의 시티폰(CT-2)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집에 있는 무선 전화를 확장한 개념)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우리와는 달리 송수신 겸용이고 송신 가능한 지역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도시같은 경우 거의 전 지역을 커버함). 이것은 소비자 가격은 6만엔 가량인데 어찌된셈인지 실 판매가는 5천엔 근방이고 500엔 짜리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사용자 사은 행사때 그냥 주기도 하고 가입하면 무료로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물안 깊은 곳등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고 지역적으로도 통신 불가능한 곳이 약간씩 존재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유명한 회사로는 장비업체로는 '쿄세라(Kyocera)'가 있고 서비스 업체로는 '아스테루(Astel)'등이 있습니다. 삐삐는 이제 별 인기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TV 광고에서도 본적이 없을 정도..)

    마지막으로 NTT에서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B-ISDN 사업이 있습니다. B-ISDN(Broadband-Intergrated Service Digital Network)이란 말 그대로 광대역 종합통신망인데 개개인에게 약 2Mbps의 대역폭을 제공해줘 오디오,비디오 수신까지 가능케 해주는 그야말로 꿈의 통신망입니다.(물론 기존의 전화망도 통합되지요). 미국에서는 NII(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ure)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Infromation SuperHighway 사업입니다. NTT 에서는 INS(Information Network System) 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이미 N-ISDN (Narrowband:협대역)은 상용 서비스에 들어가 TV 광고에도 나오고 있습니다.('전화 64, PC 64 합해서 128kbps' 라는 로고송과 함께.. :1996년 8월 상황). 일본은 지금 컴퓨터에 친숙한 20대가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게 되는 2015년을 이 B-ISDN 이 성숙,안정화 단계에 들어가는 시기로 잡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도 2015년을 B-ISDN 완성의 해로 보고 있지요.)

  9. 언어와 생활 양식

    흔히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문화를 반영한다고 한다. 이 말은 언뜻 당연하게 들리고 또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많이 보아오던 말이어서 보통 별 의문없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언어가 어째서 그 민족의 문화를 반영하죠?"라는 물음에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 같다. 아마 외국에 나가 살면서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그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해 봐야만 알 수 있지 않을까 :-)

    한국과 일본은 같은 유교 문화권이어서 존칭이 대단히 발전했다. (유교 문화의 발상지인 중국에는 존칭이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적은 있지만, 일단 한일 비교로 국한시키자.) 특히 무사의 힘이 막강해 평민의 생사 박탈권을 갖고 있던 일본에서는 극존칭,극비칭이 발달하였고 자신의 뜻을 뚜렷이 밝히지 않는 모호한 어법이 발전했다. 즉, '해야 한다' 보다는 '하지않으면 안된다' 이고 그나마도 '안된다'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주어+동사로 문장을 완결시키지 않고 주어만을 말한뒤 어물쩍 거리면 대개는 잘 알아 듣는다. "-데스, -마스" 보다는 "-데스가...,-마스케도..(입니다만.. 합니다만..)" 라고 하여 언제라도 상대방이 꺼려할 경우에는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아마도 이런 모호함이 그들의 특징인 이중성을 띄게 하지 않나 싶다. 한편으로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상대의 의견만 존중하여 자신의 의견을 관철 시키지 못하다 보면 당연히 거기에 대한 반발심,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무의식이 싹트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무뚝뚝한 듯 보여도 한번 마음을 열면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는 옛 '경상도 사나이들'과는 정반대로 누구에게나 상냥하면서도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않아 결국은 혼자인 사람들. 집단의식속의 개인주의. 하나하나 충실하면서도 결코 서로 섞이지 않으나 불과 물이라는 촉매가 있으면 쩍 달라 붙는 '쌀'과 같다고나 할까 ..

    또하나의 특징은 한자어의 영어 전환이다. 일본이란 나라의 사람들은 외국을 대단히 좋아하며 '개방적'이다. 세계 최고인 물가탓도 있겠지만 방학만 되면 외국으로 나가려한다. 지하철에도 '문'을 조심하세요 대신 '도아'를 조심하세요 라고 씌어져 있고 '입주자'모집 대신 '테넌트'모집 이라고 대문짝 만하게 붙여져 있다. 아주 어려운 단어도 대개는 알아 듣는다. 중국 중심이던 옛날과 달리 영어권 문화가 곧 세계 문화가 된 현실에 비춰 볼 때 대단히 '실리적'인 사람들이기도 하다. 매년 셀수없이 생겨나는 '신조어'들을 보면 ('가라오케'같은) 백화점, 슈퍼마다 넘쳐 흐르는 아이디어 상품들이 떠오르고 극존칭을 써 인사하는 종업원들을 보면 그 뒤에 숨겨진 무서운 상술이 떠오른다.

    일본어를 처음 배우다 보면 우리말과 비슷한 것이 많아 놀라게 된다. 아니, 역시 우리 문화를 그대로 가져 갔어 라고 "짜식들"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점점 깊이 들어갈 수록 그들만의 표현에 놀라고 언어의 아름다움에 빠져들때도 있다 (역시 언어는 문화의 '결정체'야 하며). 참고로 "일본어를 얼마나 공부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가장 좋은 답은 일본인들이 '아, 일본어 참 잘하시는 군요'라고 더이상 말하지 않을 때까지라고 하는데 이 대답은 참 재미있고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0. 자판기의 나라 일본

    일본은 우리와 같이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국민 소득도 높은 국가 전체가 '도시형'인 인구 밀집 지역입니다. 따라서 신칸센같은 고속 전철이 시장성이 높고 ISDN이 빨리 발달한 것도 어쩌면 당연할 것같기도 합니다. (기술력도 뒷받침되었으니까요) 이렇게 어딜가도 사람들이 많다보니 자판기 보급률이 거의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담배,음료수는 물론 핫도그,계란 후라이, 카세트 테이프, CD 에 이르기 까지 많은 제품들이 자판기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대학교내의 캔음료는 보통 시중가의 70 % 정도이나 일본의 경우는 110 엔으로 동일합니다. 간혹 게토레이등은 여름동안 서비스 차원에서 500ml짜리를 발매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100엔 짜리 캔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110엔 정가 그대로 받습니다. 담배의 경우 말보로등 외국산도 많이 팔리고 있는데 일본산도 거의 모든 표시를 영어로 하기 때문에 외국산과의 구별이 힘듭니다.(담배 가격은 대개 220엔, 어떤것은 240엔) 또 우리와 같이 은박지를 뜯어내는 식이 아니라 곽(box)담배이기 때문에 (우리는 면세점에서만 이런 곽담배를 팔죠) 갖고 다니기도 훨씬 편합니다. 일본은 아마 세계 최고의 흡연국이 아닌가 싶은데 대학생은 거의 90% 흡연 하는 것같고 여자들 흡연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대합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물고 대화하고 있는 여성들을 아마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11. 이지메와 노조끼

    사회적 문제인 '이지메' 는 한국사람들도 왠만큼 알고 있을 것 같다. 청소년 자살의 가장 큰 문제인 이지메는 이제 공식적 '범죄'로서 그 담임,교장까지 형사 처벌을 받게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심찮게 이지메에 의한 어린 학생들의 자살이 아침 뉴스를 장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지메의 대상은 주로 아주 소심하거나 신체적 장애가 있는 학생, 때로는 아주 똑똑하고 성실한 학생에게 집중된다고 한다. 즉,'평범'의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은 집단적인 따돌림으로 결국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돌림을 당하다 그 해결책으로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꼭 유서를 남긴다는 것인데 뉴스는 이 유서에 빨간줄까지 쳐가며 집중적으로 방송한다. 강한자에게는 약하고 약한자는 철저히 짓밟는 이들의 속성은 자기 민족에게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노조끼'라는 것은 '엿보기' 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엿보고 흠담을 일삼기를 좋아하는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타카노 하나와 미야자와 리에 의 사랑이 깨졌을때 리에의 일거수 일투족을 추적해 방송하던 민방의 방송 내용이나 부부 싸움 끝에 남편을 살해한 아내의 평소 생활,부엌의 배치로 따져본 아내의 성격(후라이팬 하나의 배치 까지도 따지고 든다) 등이 나오는 아침 TV 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뭐 이런 걸 아침에 틀어주나 하는 생각 뿐이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신체 장애 학우를 괴롭혀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뉴스를 접하면 나쁜 것만 배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2. 큐슈 여행

    나는 일본을 이루는 4개의 섬중 가장 마지막 (맨 밑에 있는)섬인 큐슈에 (후쿠오카) 살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나의 첫 여행지는 큐슈가 되었다. 큐슈는 약 4만 제곱 킬로미터의 면적에 4천만 정도의 인구를 갖고 있는데 섬 전체가 관광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관광 명소가 많다. 우리에게 익숙한 벳부 온천을 비롯하여 세계 최대의 칼데라 아소산, 원폭의 현장 나가사키, 일본 3대 성의 하나를 갖고 있는 쿠마모토, 아름다운 현수교의 시모노세키, 우리 나라에는 없는 활화산인 운젠화산, 지금도 매일 화산재가 날리고 있는 카고시마 등 어딜가나 볼거리다. 나는 아니 우리 E 동 사람들 5명은 12월 30일 부터 이틀간 자동차를 렌트하여 조금의 쉬는 시간도 아까와하며 여기 저기를 돌아 다녔다. 새벽에 출발 3시간 정도 달려 나가사키에 도착, 원폭 기념관과 구라바 정원이라는 옛 네델란드인들이 살던 집들을 모아 둔 장소를 둘러 보았다. 부산 야경과 비슷하다는 나가사키의 야경은 보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항구의 모습을 산에서 내려다 본 후 부리나게 운젠산으로 이동했다. 나가사키 시내의 노면 전차 때문에 거의 서울 시내를 방불케 하는 교통 지옥을 겪은 뒤 유유히 시내를 빠져나와 바닷가를 타고 운젠산으로 향했다. 운젠은 95년 인가에 한번 크게 폭발(사진) 하여 인명 사고 까지 났던 산이라 한다. 지금은 화산재에 묻혀 지붕만 보이는 집(사진)들이 관광지가 되어 있고 산 곳곳에서 하얀 연기(사진1) (사진2) 가 솟아 나오는 곳이다. 상업화에 찌들어 이상하게 되어버린 벳부보다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이곳 운젠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큐슈의 중심 쿠마모토. 일본 3대 성의 하나라는 쿠마모토 성 (사진) 은 지금도 계속 개축을 하며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에 있는 성들 중 유일하게 2차 대전 중 폭격을 피했다고도 한다. 일본 성들의 특징은 높은 천수각(사진)인데 대부분의 경우 도시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어 도시 구경에 제격이다.

  13. 도쿄 여행

    하네다 공항(국내선전용:국제선 공항은 나리타)에 내려 모노레일로 도쿄도에 들어섰을때의 첫 느낌은 '서울하고 똑같네' 였다. 정말 서울과 똑같았다. 조금 낡은 듯한 지하철, 불야성같은 유흥가, 여의도 같은 사무 중심지 등등 어느것하나 다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도쿄는 도쿄이고 서울은 서울. 도쿄를 구경하려면 '야마노테'라는 순환선(지하철 2호선 같은)을 잘 이용해야 한다. 도쿄 대학이 있는 우에노, 유럽에서 수입한 대리석으로 휘둘렀다는 신축 도쿄도청이 있는 신쥬쿠, 미니 스커트를 입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듯한 시부야,동양 최대의 환락가라는 록퐁기, 전자 상가 아키하바라 등 거의 모든 볼거리들이 집중되 있다. 이외에 시간이 좀 많은 여행자라면 도쿄 교외의 카마쿠라, 디즈니랜드, 후지산 등을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시내 구경은 빨리 서두를 경우 이틀, 교외의 곳은 도쿄에서 왕복 하루 정도로 잡으면 된다.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를 잘 익혀 놓는 것이 좋고 한국말로 된 여행안내서는 필수. 잠은 유스호스텔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캡슐호텔은 싸지만 안전에 약간 문제가 있고 여자는 95% 잘수 없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밤늦게 외국인을 받는 호텔은 거의 없다. 도쿄대 여행의 포인트는 60년대 '동경대 사태'라는 공산 시위때 불탄 도서관 건물이고 신쥬쿠는 도쿄도청과 지하철역의 수많은 노숙자들(호무레스:homeless 라고 함), 록퐁기와 시부야는 밤의 정경(?) 등이 될 것같다. 아카사카는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으나 이제는 고급 요정들 밖에 없어 전혀 볼 게 없으며 아키하바라는 일본 경제의 '거품'이 겆히면서 가격도 싸지 않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14. 일본속의 한국을 찾아서 : 교토-나라-오사카

    "일본속의 한국을 찾아서" : 내가 귀국을 눈앞에 두고 꿈에도 그리던 배낭여행을 (혼자서) 떠나면서 나름대로 붙여본 제목인데 지금 봐도 꽤 그럴싸하게 보인다. :-) 1996.7.22 새벽 신칸센으로 후쿠오카를 떠나서 히로시마-쿄토-아스카-나라-오오사카- 고베-마쓰야마(시코쿠:일본의 4개 섬중 가장 작은 섬)-시모노세키-후쿠오카를 잇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황금의 스케쥴이었다. 또 일반 배낭 여행객이라면 좀처럼 찾기 힘든 아스카를 방문하여(하루 일정으로) 그 유명한 타카마쓰 고분군과 성덕 태자 유적지들을 둘러본 것도 커다란 수확이었다. 내가 그 곳을 또 찾아가 볼 기회가 언제쯤 또 있을까 ? 일주일간의 여행에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마구 찍어댄 사진만해도 36장짜리로 4통 가량. 지금보니 역시 여행에 남는건 사진 밖에 없는 것같아 다행스럽다. (히히..이렇게 기행문(?) 쓸때도 편하고..). 이 여행 스케쥴은 내가 거의 2달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짠 것이므로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히 권하고 싶다. 일주일짜리 JR 패스도 판매하니 아마 딱 알맞지 않을까.

    히로시마

    하면 역시 원폭 박물관. 서양 사람들 특히 미국 아줌마들은 남아있는 그 당시의 폐허(사진)등을 보고 "우리가 이렇게 참혹한 짓을.."하며 훌쩍대기도 한다지만 우리로서는 뼈아프면서도 한편 후련한 마음 금할길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사진에서 주로 보던 뼈대만 남은 돔형태 건물은 원폭 기념관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상공회의소 건물의 잔해이다. 기념관 안의 글들을 조금 들여다 보면 '강제 징용된 한국인 중국인들의..' 라고 하는 구절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도 사람인 이상 미안한 감정도 있겠지. 그 다음은 일본 3대 절경중의 하나라고 하는 '이츠쿠시마 신사'. 이것은 히로시마 앞바다의 조그마한 섬에 위치하고 있는데 밀물때는 물에 잠겨 마치 물위에 떠 있는 신사같이 보인다. 밀물 시간이 언제인지에 따라 원폭 기념관 을 먼저 볼 것인지를 정해면 좋을 것 같다.

    쿄토

    하면 역시 '일본의 경주'라는 말에 걸맞게 수많은 절과 국립 박물관(꼭 가볼것!!)이 그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쿄토에서는 1일 버스승차권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쿄토역 앞에 가면 안내소가 있으니 반드시 가보고 신칸센 역내에 있는 각 유적 팜플렛들은 무조건 다 들고 와야 한다.(안들고 오면 언젠가는 후회함). 또 유네스코 지정 유적들을 먼저 찾아 보는 것이 좋을것이다. 시간이 남으면 쿄토대도 구경하고. 숙소는 역시 유스호스텔이 좋지만 봄,가을이라면 쿄토대 기숙사중 하나인 '요시다료'를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다. 대학생이라고 얘기하고 1박을 청하면 하루 200엔에 재워 준다. 그런데 시설은 완전 귀곡 산장 빰치니 조심하기를.'쿠마노료'라는 다른 기숙사도 있는데 이곳은 일본 공산당의 산실로 좀 꺼림직하다. 교토의 볼거리는 너무나 많고 또 유명하기 때문에 모두 생략하고 박물관에 대해서만 약간 소개한다. 쿄토 소재 국립 박물관은 제국주의의 표본답게 한국과 중국의 유물을 다량 전시하고 있다. 원산지(?) 표시도 자세하게 되어 있고. 또 복도에 걸려있는 연대표를 자세히 보면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왕조로 표시되 있는 것도 흥미롭다. 아! 그리고 '에가므라'라는 영화세트마을이 있는데 일본의 시대극들은 이곳에서 찍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입장료는 2000엔. 사실은 한 800엔 정도의 가치밖에 되지않는것 같다.

    나라

    라는 지명은 '우리 나라'라는 우리말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한 일본인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나에게 이것을 물었다:'나라'또'우리나라'와 돈나 칸케가 아리마스까? 라고) 그렇듯이 나라의 유물은 우리 것과 거의 비슷해 포근함마저 느낄 수 있다. 만나서 얘기한 일본 사람들도 나라의 유물은 아마 대부분 한국것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나라시 약간 아래에는 너무도 유명한 '호오류우사'가 있다. 입장료 1000엔. 금당벽화는 어두운 곳에 숨어 있어 여간해서는 눈에 띄지 않으니까 못찾았을 경우 꼭 물어보아야 한다.( '벽화'는 '헤키가'라고 함). 그리고 일본내의 모든 절은 '몽겡'이라는 폐문시간 (대개 오후 4시 반)이 있으므로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에 서둘러야 한다.

    아스카

    는 나라에서 열차로 약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프로 야구단으로 유명한 킨테츠 기차를 타고 넓게 자리잡은 평야를 가로질러 가다 보면 보면 (화산섬인 일본에는 평야가 흔치 않다.) 왜 이곳에서 고대 문명이 싹텃나를 알 수 있다. 창밖으로 바라다 보이는 평야를 오래 보고 있노라면 열차는 '일본인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아스카에 도달한다. 아스카역에 내려서부터는 900엔 주고 하루 동안 자전거를 빌려타는 것이 좋다 (자가용으로 온 것이 아니라면..버스가 없음.). 먼저 타카마쓰 고분. 벽화에 나타난 옛 고구려인들의 모습.정말 여기가 일본인가. 이것을 남긴 사람들은 우리의 조상이 아닐까. 그들도 그것을 아는지 고구려의 강서대묘와 사진으로 비교해 놓고 있었다. 그다음 일본의 '천황'릉. 우리와 달리 봉분위에 나무를 울창히 심어 놓아 하나의 작은 산과 같이 보였다. 내가 간 날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구름한점없이 따가운 날이었다(체감온도 40도..).얼굴과 몸이 모두 새까매졌지만 기분하나만은 정말 좋았다. 이곳여행의 또하나 작은 묘미는 아스카역앞의 안내소에서 팜플렛을 한장 사서 각각의 명승지의 스탬프를 찍으며 돌아보는 것이다. 자신있게 말하지만 아스카 여행은 어렵긴하지만 (다른 곳에 비해) 어려운 만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오사카

    에는 정말 한국사람이 많다. (통계로도 1위라고 한다.2위 토쿄, 3위 후쿠오카). 여기저기 한국음식, 조선 뭐뭐 라는 간판이 나붙어 있다. 불고기 백반 하나를 먹어봤는데 깔끔하고 맛도 괜찮았다. 오사카는 여느 대도시와 비슷하므로 특별히 볼 것은 없고 일본 3대 성(castle) 중의 하나인 '오사카조'와 부산의 국제시장 (피난시절 어려운 사람끼리 모였다는 의미에서..)같은 '국제시장'(쓰루하시역옆)을 권한다. 이곳 국제시장에 가면 한국말을 이곳저곳에서 들을 수 있고 신라면, 김치, 한복,고춧가루 등 한국산 식품들을 대부분 구할 수 있다. 물건을 파시는 아주머니께 '이거 얼마예요 ?'하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결국 물어보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강인한 어머니들이 계시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시코쿠

    는 여행 마지막에 들른 곳이라 너무 피곤해 마쓰야마란 도시에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라는 '도고'온천만 들린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시코쿠야 말로 일본에서 가장 오염되지 않은 원시 자연을 맛볼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길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가보시길. 시코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도고'온천과 남서부의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라는 '시만토가와'일 것 같다.

    이로서 내가 바라고 바랐던 쿄토-나라-오사카 여행은 막을 내렸다. 후쿠오카에 도착해 먼저 한잠 푹잔 나는 내 옆방 사람인 장 철호의 만돌린 소리도 아니고 기타 소리도 아닌 반주에 맞춘 '깩깩이' 노래에 잠을 깼다. 그 사람도 나보다 한주 앞서 도쿄여행을 다녀온터라 2주만의 만남이 참 정겨웠다. 역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포근함을 주는 것 같다. 나는 이번으로 세번의 큰 여행을 마쳤다. 첫번째 큐슈여행, 두번째 도쿄여행 그리고 이번 여행. 가는 곳 마다 그 풍경, 그 정취가 너무 아름다왔고 그 아름다움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항상 언제 다시 이곳 이 자리에 올수 있을까.. 하고 되뇌이곤 했었다. 이 여행으로 일본에서의 내 생활도 조용히 끝나가고 있었다.

  15. 일본 여행의 포인트

    먹거리

    를 빼놓고는 여행의 묘미를 말할수 없을 것이다. 일본 여행의 포인트라면 먼저 각 지역의 역마다 파는 '역도시락'인 '에키벵'을 들수 있다. 지역의 특산물로 만들어 지역색을 잘 드러낸다. 또 한가지는 라면인데 우리의 라면과는 달리 면도 굵고 차라리 우동에 가깝다. 도쿄 지역의 라면은 간장(쇼유)을 사용하여 검고 담백하며 후쿠오카 지방의 하카다 라면은 뿌옅게 짙은 육수 국물이 진미이다. 보통 밥과 같이 먹으면 5-600엔 정도라 가격도 괜찮다. 값싸게 식사를 해결하려면 '혹카혹카테'라는 도시락 체인점을 이용해도 된다. 보통 푸짐한 도시락하나를 즉석에서 해주는데 300엔에서 900엔 정도이며, 맛도 상당히 좋다. 또 '요시노야'라는 일본식 고기 덮밥 전문 체인이 있는데 대개 24시간 영업하며 가격도 350엔에서 600엔 정도이다. ('규동'이라고 부르며 날달걀을 얹어 비벼 먹으면 맛있다.) 또 보통 백화점 맨 위층에 있는 식당가에서 정식을 먹어도 의외로 비싸지 않다. 한 800엔에서 1200엔 정도이니까. 한끼 그냥 때울 거라면 편의점이나 맥도날드 같은데서 먹어도 된다. 유의할 것은 대,중,소 등 여러 가지를 물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자장면 보통'하는 식으로 '흐츠(보통)'이라고 했다가는 못알아 들으니까 공부해서 가시기를. 또 목이 마르다고 해서 주변 가까운 로손(24시간 편의점)에 가서 덥석 마시기 보다는 '마루쿄'나 '다이에' 같은 양판점에 가서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하면 여비 아끼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보통 오전 10시에 열어 저녁 8시 에서 10 시 사이에 문을닫는데 문닫기 1시간 전쯤부터는 30 % 가량 할인하는 것이 보통이다. 랩으로 싸놓은 반찬거리, 하나에 50엔하는 초밥, 김밥, 도시락 등 식사 대용품이 무궁무진하니까 이것도 괜찮을 듯.) '다이에'는 전국 체인으로 LG 트윈스와 임 선동 선수 문제로 줄다리기를 멀였던 프로 야구단 '후쿠오카 다이에 혹스(hawks)'의 모기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대만계 왕 정치 씨가 감독으로 있다.

    숙소

    는 유스호스텔이 가장 적당하며 학생이 아니라도 묵을 수 있다. 1인당 가격은 호텔이 7천에서 1만 5천엔정도 , 비즈니스 호텔이 싼 곳은 4천 5백엔에서 8천엔 정도 유스호스텔이 2천에서 3천엔 가량이다. 주의할 것은 '여관'이라고 표시되는 료칸은 우리의 허름한 여관이 아니라 '일본식 호텔'을 뜻하는 것이어서 가격이 1급 호텔급이다. 그러나 돈 걱정 할 필요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곳 에서 일본식 음식에 일본식 다다미 방에서 일본식 '욕의'를 입고 일본식 생활에 젖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식 욕의인데 이것은 입고 있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벗기'위한 것이므로 다음은 상상에 맡긴다. 각 유스호스텔 에서는 회원 등록도 할 수 있는데 1박에 500 엔 이상 싸지므로 장기 체류하는 경우 에는 이득이 된다. (사진 필요없이 2500엔 정도만 내면 된다.)

    교통

    은 철도와 버스,페리가 있다. 철도는 한국에서 가는 경우 주 단위로 JR 패스를 끊을 수 있으므로 이것이 가장 좋다. 한가지 주의 할 점은 JR 은 국철이 아니지만 전국망을 갖고 있고 (7개 회사의 연합체) 국철 구간은 아주 빈약하다. 또 지역마다 사철이 있어 역이 다른 경우도 있으므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또 멀리 이동하는 경우 밤에 페리를 타고 가면 숙박비도 절약되고 생각보다 안락한 밤을 보낼 수 있다. 이런 교통편들은 일본내 각 대학교에 있는 coop. 즉 협동조합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물론 일본어를 하는 경우). 시내 버스의 경우 지역마다 탈때 내는 수도 있고 내릴때 내는 수도 있으며 구간별로 요금이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다. 현금을 낼 수도 있고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는데 교토 같은 관광지의 경우 1일 이용권을 구입 하면 좋다. 버스기사들은 대부분 아주 상냥하므로 모를 경우 미리가서 물어 보면 아주 자세히 대답해 준다. 물론 일본어로.

    가장 중요한 점

    은 일본 내 어디를 가더라도 볼만한 곳은 모두 입장료를 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500 엔에서 금당벽화로 유명한 호오류사의 1000엔 까지 아주 비싸다. 그래서 하루에 5000엔 정도 예산으로 온 사람들은 빨리 한국으로 되돌아가기를 권하고 싶다. 적어도 10,000엔 정도 예상해야 여행다운 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역이건 여행자를 위한 안내소가 있으므로 도착하면 반드시 이 곳부터 찾도록 하자. 그리고 볼만한 곳은 미리 안내서등을 통해 충분히 알고 또 그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가야지 책만 보고 가다가는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운전을 할 수 있고 국제 면허증을 가진 경우는 렌트를 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과 달리 출발지와 목적지가 다른 경우에는 거의 이용할 수가 없다.

  16. 일본의 술

    오늘자 중앙일보를 (97.3.19) 보니 진로 소주가 일본에서 판매고 2위를 차지했다고 하네요. 기쁜 소식임에는 틀림 없지만 일본에서의 소주는 우리와 조금 다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선 값이 비싸(1000엔 근방) 대중주라 할 수 없고, (병모양도 양주병에 가깝습니다.) 감미료를 넣지 않는 듯 상당히 씁니다. 우리에게는 맛이 없죠. 많이 마시는 순서를 보면 (대학생 기준) 맥주 (기린,아사히 등) 청주(월계관 등) 양주, 칵테일 등인데 맥주 청주(니혼슈:일본주)는 반주라고하여 저녁 식사 때마다 한잔씩 합니다. 우리의 동양,조선 맥주와 같이 일본도 기린 맥주가 거의 반이상의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는데 몇년전 아사히에서 수퍼드라이를 히트시켜 지금은 근소한 차이로 아사히가 앞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우리와 비슷하죠.) 일본에는 계절별로도 맥주가 나옵니다. '겨울이야기 (흐유모노가타리)' 또는 '봄이왔다(하르가키타)' 등등. 맥주 종류도 많아 제가 마셔본 것만 해도 20 종 이상이 됩니다. 청주는 우리의 정종인데 '니혼슈'라고 부르지요. 따뜻한 물에 중탕으로 데워 마시는데 달작지근하여 맛이 좋습니다. 소주, 양주는 '오유와리(뜨거운물 타마시기)', '미즈와리(찬물,얼음물 타마시기)' 등을 하여 마시고 우리처럼 스트레이트로는 왠만해서는 안마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술을 팔 수 있는 곳도 제한되 있어 술을 취급하는 상점 앞에는 '오사케 (술)' 이라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술만 전문적으로 파는 '오사케야'도 많고요. 길거리에는 판매 시간 제한장치(밤 11시까지)가 부착된 자동 판매기도 있습니다. 술이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17. 일본에 진출한 한국인들

    먼저 대부분 아시겠지만 롯데 그룹 신 격호 회장이 있죠. 이 사람은 전후 자수 성가한 기업인으로 일본인 사이에도 높게 평가되고 있는듯 했습니다. 롯데 그룹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 작년 (96년) 부산에 롯데 백화점이 생길때 일본인들이 더 좋아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니까요 (가깝고 가격싸고 브랜드 이미지도 좋으 니까 쇼핑겸 관광겸..좋죠.). 스포츠맨으로는 히로시마에서 활약하고 있는 노 정윤(축구), 나고야 주니치 드래곤즈의 선동열, 오이타에서 뛰고 있는 조 성민 (이상 야구)등과 얼마전 후쿠오카 다이에 혹스와 LG 트윈스의 분쟁을 일으켰던 임 선동(결국은 LG행)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중 노정윤은 축구팬 사이에서 상당히 인기가 좋고요 선동열은 '정말' 뉴스의 중심이 되었으나 몇 게임 치른 후 옛날 슈퍼 게임에서 보여 주었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2군으로 내려 앉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조성민은 안타깝게도 혹평을 받았고요. 최근 (97년)또 우리의 루키 '홍 명보'가 진출한다니 기대가 큽니다... 연예인으로서는 유명한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과 어언 10여년 전에 진출하여 '확고'한 자리를 구축한 김 연자氏 와 또 한 여자 가수가 있습니다 (이름을 잊어 버렸네요..). 또 이 혜숙인가 하는 여자 배우는 '포'업계에 진출했던 적도 있었죠. 그리고 마라톤의 황영조, 96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 때 인상적 플레이를 한 배구의 임도헌 등이 알려져 있는 편이고 타이완 친구한테 들은바에 의하면 대만에 진출한 김완선도 정말 인기가 좋답니다 (물론 대만에서..). 아무튼 우리의 건아들이 이렇게 우수한 기량으로 외국에 진출한다는 것은 기쁘고 가슴 뿌듯한 일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韓國人 화이팅!!

  18. 일본에 관한 책들

    나는 일본어 공부할 시간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출국 열흘전부터 '일본은 없다' '일본은 있다' 류의 책만 몇권 읽고 갔다. 그 책들이 어쩌면 외국에서 겪게 된다는 문화 충격(cultural shock)을 막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들을 읽고 직접 살면서 느낀 것을 토대로 한번 평가해 보려고 한다. '일본은 없다' :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정말 속시원한 책이다. 일본 생활의 거의 모든 면을 다루고 있어 유학이나 이민갈 사람들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라'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우리의 법을 일본인에게 적용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전 여옥)의 평가를 나름대로 걸러 가며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본은 없다2' : 저자(전 여옥)의 사상이 정리된 책이라 별 도움이 되지 않는것 같다. '일본은 있다' : 일본은 없다 가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일들에 관한 것이라면 이 책은 일본을 이끌어 왔던 1 % 의 지도층에 관한 얘기이다. 폐쇄적으로만 흘렀던 우리의 근대사에 비춰 보면 나름대로 생각할 점을 주는 책이다. '일본인과 에로스' : 일본은 있다 의 저자 서 현섭 씨가 쓴 글인데 흥미거리로 읽기에 알맞다. 이외에 이 어령 씨가 쓴 책등 일본에 관한 책은 생각보다 아주 많다. 또 일본학의 고전으로는 '국화와 칼'이라는 책이있다. (2차 대전 직후 미국인이 쓴 책인데 정작 이 사람은 일본에 가본적이 없다고 한다.)

  19. 일본의 대학

    먼저 일본에 유학하려면 어떤곳이 좋은 대학인지를 알아야 겠죠 ? 일본은 우리와 같은 4년제 대학과 전문대 같은 단기 대학, 그리고 여러 특수 목적 대학 이 있습니다. 먼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명한 제국(imperial) 대학 7개 인데 홋카이도,토호쿠(동북),도쿄,나고야,쿄툐,오사카, 그리고 큐슈 대학교 입니다. 이들외에 서울의 경성제국, 대만의 대만 제국대학 까지 모두 9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공식 명칭을 국립대학교 로 바꾼이후에도 유명세를 유지하고 있고 외국에서도 어느정도 인지도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외 사립대도 유명한곳이 많은데 연고대 와 자주 비교되는 와세다,게이오 대학이 있죠. 외국인이 유학할 경우에는 보통 6개월에서 1년의 연구생과정을 거친후 정식으로 입학을 하게 됩니다. 물론, 연구생 과정이 끝난후 시험을 쳐야 하죠. 일본의 대학생들은 석사까지는 거의 기본적으로 마치나 박사과정 진학률은 10-30% 정도 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외국인 학생들이 급증하는 추세고요. 장학금 혜택도 많아 한번 가볼만한 곳인것 같습니다. 물론, 이상한 여행사에 속아서 가서는 안되겠죠. 우리나라의 대부분 국립 대학교 들과는 자매 결연 학교도 많아 대부분 교환 학생들을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것도 괜찮은 제도 인것 같습니다. 큐슈대의 경우는 과기원,부산대,충남대,강원대 그리고 이화여대 등이었습니다. 아! 또 한가지 JAIST는 Japan Advance Institue of Science & Technology 의 준말 (딱 한자가 틀리죠..)이기는 하지만 1982년에 KAIST 를 본따 만든 지바현립 (국립이 아님) 기관입니다. 시설은 좋기는 하나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의 학풍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답니다.

  20. 일본 유학

    나는 '교환 학생'이라는 특이한 (!)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큰 마찰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참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등하교 시간, 수업 시간 조절 등 모든 일을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결정했었다. 이처럼 교환 학생에게는 최대한의 자유가 보장되나, 실제 그들과 경쟁하며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랩에 따라서는 교수가 여자를 엄청 밝힌다던지 변태같은 놈들이 있다던지 한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내가 있던 연구실 사람들은 모두 순하고 잘 대해 주어 거의 모든 기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중간에 사랑니를 빼는 바람에 조금 괴롭긴 했지만...). 옆방의 장 철호 한테 들은 바로는 '유학가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외국의 선진 문물을 얼마만큼 배워 오느냐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서 적응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며 학문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과 (그들은 홈그라운드의 잇점도 갖고 있다.)경쟁하여 앞서 나가려면 그 고생은 이루말할 수 없을 것이다. 랩(labarotory) 생활(랩사람들)에 시달리다 못해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성격까지 변해버리는 사람, 아무 말 없이 한국으로 훌쩍 떠나 버리는 사람 등등 유학의 괴로움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아무쪼록 외국 유학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은 이 점을 꼭 잊지 말기를 바란다.

    유학생의 경우 장학금 혜택이 상당히 많다. 또 로타리 장학금등은 기독교 신자의 경우 좀더 유리하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다. 반면에 신청자들의 수도 많아 쉽게 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금액별로는 한달에 3만엔에서 10만엔 까지 있는데 보통 5만엔 정도가 가장 많은 것 같다. 아르바이트는 많이 하긴 하지만 처음 가서는 그리 구하기도 쉽지 않고 급료가 좋은 유흥 업소의 아르바이트는 법적으로(만) 금지되어 있으니 이점도 유의해야 한다. '신문 배달 장학생'이란 것도 있는데 일본의 유명 일간지들은 보통 하루 두번 발행하므로 하루 6시간이상 배달에 투자해야 하는 점도 주의 해야 한다. 공부나 여행이나 마찬가지로 돈없이는 뭐든 제대로 하기 힘든 세상이 된것같다. 물가가 비싼 일본에서는 특히 돈 아끼려는 생각하다가는 몸 축나고 소기의 성과도 달성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많다. 정리하면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은 없다고 생각하여야하며 집세,보증인,문화적 충격에 대한 각오,일본어 실력,자금력 등으로 무장하지 않는한 힘겨운 유학 생활이 될 것 같다.

  21. 그들의 망언

    잊을만 하면 한번씩 해주는 그들의 망언 덕택에 우리의 적개심은 절대 누그러지지 않는것 같다. (좋은일이군..) 하시모토 류타로를 비롯한 극우파 정객들은 한중 관련 망언을 서슴치 않는 듯한 모습이다. 신사 참배야 그들 내부의 일이라 치더라도 과거사를 덮어버리거나 미화하려는 듯한 발언은 도저히 우리를 참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깊숙해 들어가 보면 이들 망언에는 우리와 관계없는 정치적 부분이 깊게 관련되 있다. 정치적 곤경에 빠진다거나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면 한번씩 건드려 보는 정치적 트릭의 하나인 것이다. 몇몇 일본의 신문들은 그러한 사실도 기사화하고 있다. 즉, '누구누구 장관은 자신의 도피처로 한국을 선택했다' 는 식으로. 또 일반 국민들은 그런 발언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만 뉴스에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불타는 일장기를 보면서 조용히 흥분할 뿐이다. 이런데는 우리 언론의 책임도 '막중'하다고 생각한다. 스포츠 신문도 아니면서 왜 일발성 기사만 써대는지 정말 한심하기만 하다. 96년 2월 23일 전자 신문에 게재되었던 기사 몇줄을 적어볼까 한다. -- 최근 일본 총리와 외무 장관의 망언이 또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지금까지 얼마나 얕잡아 보았으면 이러한 망언이 계속되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독도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정대립의 수준을 벗어나 국력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야 어쨌든 현재 우리의 국력이, 국가의 힘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강했다면 이러 한 망언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냄비의 물 끓듯이 일시적으로 달궈지고 식어버리는 대 일본 감정 싸움 차원에서 벗어나 이제는 보다 냉정하고 차분히 우리의 국력을 키워야만 할 것이다. --

  22. 독도는 우리땅

    한때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노래는 얼마후 금지곡이 되어 버렸고 한동안 불려지지 못하다 요즘다시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일본은 그들의 막강한 힘을 이용한 주변 섬들에 대한 영유권 주장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러시아와는 사할린 남쪽 북방 4개섬, 대만-중국과는 오키나와 남쪽 (한참 남쪽) '어조도'분쟁, 그리고 우리와는 그들이 '타케시마'라 부르는 독도 분쟁. 96년 1월 우리가 경제 수역을 선포하면서 독도 점유를 기정 사실화 해버리자 그들도 우리 대사관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였고 방송도 1시간 짜리 특집 다큐멘타리를 통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방송의 내용은 독도가 일본 영토로 들어왔을 때와 아닐 때의 그들의 수역의 차이, 서울의 분위기 (이때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의 1절 전체가 소개되었다), 어부와의 인터뷰 등이었다. 한 어부는 인터뷰에서 '한국 어선과 공해에서 마주치면 그들은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라고 말해 우리를 웃게 했다. 저번에 한국에서 뉴스를 볼때 우리 어선이 중국 고기배를 만나면 그들이 손도끼 등을 휘두르는 통에 혼쭐이났다는 얘기가 떠올라서. 아무튼 영토의 문제는 결국 국력의 문제로 귀결 되는 것 같다.

  23. 그러면 일본은 있냐 없냐

    참 어려운 문제인 것같다. 특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일 관계에 있어서는 내놓고 '일본은 있다'고 말하기도 힘들고 '일본은 없다'고 말하자니 아주 '없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렇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일본은 우리 바로 옆 현해탄을 사이에 둔 지척에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분명 (지금 현재) 그들은 문화적,기술적,군사적, 정치적 모든 면에서 앞서 있다. 아니 앞서 있다고 판단 되고 있다. 유럽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한국말을 하는지 일본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지만 (우리가 스위스나 스웨덴 사람들이 자국어를 갖고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것처럼) 오에 겐자부로같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그들을 세계에 확실히 인식시키고 있다. 또 세계 어디를 가도 소니,아이와 전자제품이 없는 곳이 없으며 아프리카 오지에 까지 닛산,도요다의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은 일본 자본 끌어 들이기에 혈안이 되있고 미국 회사들은 일본 따라 잡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쯤되면 일본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지금 세계는 동양 음식 하면 '스시(초밥)' '사시미(회)'를 떠올리고 동양의 옷하면 '기모노' 를 떠올리고 있다. 한일문제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무는 유학생들의 집에 가보면 소니,파나소닉의 초대형 TV ,오디오 가 집안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귀국할 때 갖고 가려고 큰맘먹고 좋은 것을 샀다며 싱글벙글하는 그들의 말을 들을 때 '일본은 있다 없다'란 말은 더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또 그들이 대부분 한국 유수의 대학 출신이란데서 더더욱.

  24. 맺음말: 내가 있던 큐슈 대학교

    나는 동경 공업대,JAIST,큐슈대학교 등 중에 큐슈 대학교를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큐슈 후쿠오카(시인 윤 동주가 죽어간 도시이기도 하죠) 에 있고 일곱개의 제국 대학 중의 하나이며(역사가 길며 유명하다) 생활비가 싸다 (실제 도쿄,오오사카등에 비해 40%정도 싸다고 들었다 -집값만..) 등의 이유외에도 학교내에서 큐슈대 지원자가 많지 않아 경쟁이 적을 것이라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각설하고 큐슈대는 인구 약 4천만의 큐슈에 단 하나밖에 없던 국립 대학(1911년 설립)으로서 특히 의학과,물리학과가 유명하다고 한다. 특히 2차 대전 중 731 부대의 거점으로 부상한 의학과는 지금도 세계 최상급이라 한다. 하코자키의 메인 캠퍼스와 록퐁마쓰의 교양과정부, 시청앞의 의과대학등 도시 각처와 큐슈의 최남단 카고시마와 홋카이도에도 캠퍼스를 갖고 있다. 내가 살던 곳은 큐슈대 외국인 기숙사로 `국제 회관`이라 불렸으며 이 봉주가 달렸던 `카이즈카 언덕` 너머에 위치한 매립지에 있다. 이 기숙사에서 나는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혼자 맥주를 마시며 비디오를 보기도 했고 식사 준비도 하고 생일 파티도 하고 노래방에도 가고 볼링도 치고 사진도 찍고 괜히 혼자 울적한 마음에 담배 한가치를 뽑아 물기도 했었다. 모두 지난 추억이지만 그냥 잊기에는 너무나 재미있고 아름답고 보람찼던 기간이었다. 이제 나대신 누군가가 그곳에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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